
Green Christmas
w. plaudite (늘픈)
*아이들 모두 인간의 세계로 넘어와 살고 있습니다.
*스포는 거의 없습니다.
“이 세계에는 ‘크리스마스’라는 게 있대, 노먼.”
“크리스마스?”
노먼은 갓 만든 달걀 스크램블을 엠마의 그릇 위에 덜어주다가 고개를 들었다. 엠마는 식탁 위에 엎드려 눈만 위로 뜬 채 그를 보고 있었다. 마주친 녹색 눈이 무거웠다. 평소보다 가라앉아있는 눈꺼풀은 뜬 것보다는 감긴 것에 더 가까웠다. 노먼은 가만히 엠마와 눈을 맞추며 자리에 앉았다.
엠마는 한참을 눈만 깜박이다가 빙긋 웃었다. 고민 끝에 엠마가 지은 표정은 평소의 그것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웃음이었다. 그리고는 속삭였다.
“아기 예수님이 태어난 것을 기뻐하는 날이라고 레이가 가르쳐줬어.”
“그렇구나.”
노먼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숟가락을 들어 스크램블을 한입 떠먹었다. 엠마는 무의식적으로 그를 따라하듯 숟가락을 들었다. 한입. 엠마가 크게 베어 물었다. 엠마가 한 숟갈을 다 씹어 넘길 때까지 노먼은 속도를 조절하며 오물거렸다.
엠마가 다 먹으면 다시 한입, 또다시 한입 먹고 물 한 모금. 엠마와 노먼은 말없이 숟가락을 든 손만 움직였다.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집 안에 울렸다. 잠시 후, 엠마의 그릇이 거의 다 비워진 후에야 노먼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래서, 엠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응?”
“엠마, 나한테 크리스마스 얘기를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어?”
다정한 눈빛이었다. 엠마는 입을 꾹 다물고 두 주먹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꾹. 참듯이. 무언지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참아내며. 엠마는 짓누르며 말했다.
“크리스마스에는, 산타라는 사람이 선물을 준대.”
“…….”
“일 년 동안 씩씩하게 울지 않고 살아간 아이들에게만 선물을 준대.”
“…….”
“그럼 우리는 벌써 너무 많이 울어서, 선물 못 받겠다.”
그렇지, 노먼?
엠마가 무너진 얼굴로 활짝 웃었다. 지나갈 수 없는 벽을 만났을 때 엠마가 늘 그랬듯이. 노먼은 엠마의 녹색 눈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녹색 눈은 변하지 않는 신념. 귀신의 세계를 벗어나 처음 이 세계에 닿았을 때, 엠마의 녹색 눈을 본 사람들이 알려주었다. 어릴 때 녹색이었던 눈은 나이가 들면서 대개 푸른색으로 변하고 말지만 아주 가끔, 자라서도 녹색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고. 처음 가진 신념을 절대로 놓지 않는 사람들.
그래서 아픈 사람.
“엠마.”
“응?”
노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엠마를 두 팔로 꼭 껴안았다. 엠마는 갑작스러운 포옹에 잠시 깜짝 놀랐다가, 이내 꼭 마주 안았다. 노먼의 하얀 머리칼이 엠마의 것을 스치며 섞였다. 빈틈없이 끌어안는 건 어딘가 텅 비어버린 서로를 채워주는 방법이었다. 끌어안아 맞닿은 채, 서로의 등을 바라본 뒤에야 엠마는 웃음을 지웠다. 그제야 마음 놓고 무너져 내렸다.
“흐윽……. 흐……흐아아아…….”
한 방울씩 뚝뚝 떨어져 내리던 눈물은 결국 주체할 수 없어졌다. 노먼이 돌아보지 못하게 꽉 끌어안은 채, 비명에 가까운 울음을 토했다. 그의 옷자락을 몇 번이고 두 손으로 움켜쥐며, 결코 쥘 수 없었던 잃어버린 생명들을 떠올렸다.
“흑……돌아올 수……없는 거지? 흐으……세계를 바꿔도, 코니도 다른 모두도 절대로 살아 돌아오지 않아! 우리가, 식용아로 태어났다는 사실도 변하지 않아! 이렇게 힘들게 이 세계에 왔는데 여기서도 우리는 섞일 수 없어!”
울며 바닥을 내리쳤다. 이곳에만 오면 모든 것이 해결 될 거라고 생각했다. 어리석게도, 잃어버린 것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잃은 친구도, 잃은 시간도, 잃은 행복조차도.
엠마는 노먼의 품에서 스르륵 흘러내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망연히 가라앉은 눈에서는 조용히 눈물만 주르륵 흘러내렸다. 더 이상 비명도 없었다. 엠마는 답답한 속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가슴께를 쾅쾅 두드리다가 움켜쥐었다. 노먼은 엠마의 얼굴을 보며 바닥에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리고 엠마의 어깨에 살포시 손을 얹었다.
엠마는 바닥만 바라보고 있던 눈을 들어 노먼을 보았다. 노먼은 단단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단단하고도 견고해서 누가 달려들어도 함락되지 않을 것만 같은 웃음이었다.
“엠마.”
“…….”
“세상에는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참 많지만, 바꿀 수 있는 것도 참 많아. 그리고 우리는 바꿀 수 있는 모든 것을 두 손으로 바꿔왔잖아?”
“…….”
“기억해, 엠마. 네가 변하지 않고 나아갔기 때문에 우리가 살았어. 네가 우리 모두를 살렸고, 우리 모두를 이 세계로 인도해온 거야.”
엠마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눈물 자국은 여전했지만,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노먼은 붉게 달아오른 엠마의 눈을 모른 척하며 활짝 웃었다. 식사를 할 때처럼, 이번에도 나를 따라 웃어보라는 듯이. 엠마는 천천히 입꼬리를 들며 웃었다.
“모두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우리가 나눠주는 거로 하자. 울었다고 선물을 안 줄 만큼 산타가 속 좁은 사람이라면, 우리 중 누구도 선물을 받지 못할 테니까.”
“응……노먼.”
엠마는 그 말을 듣고서야 눈물을 닦고 완전히 웃을 수 있었다.
언제나 그들에게 주어진 행복은 없었다. 스스로 만들어갈 뿐.
